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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진보의 조짐으로 찬양되고 있는 성과들 -예컨대 남녀 동등권- 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적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나는 남녀 동등권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등을 추구하는 이러한 경향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기만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차이를 제거하려는 경향의 일부이다. 남녀 평등은 바로 이러한 대가를 치르고 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는 이제 다른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남자와 평등한 것이다. ‘정신에는 성이 없다’는 계몽주의 철학의 명제는 일반적 관습이 되었다. 성의 양극성은 사라지고 동시에 이러한 양극성에 바탕을 둔 성애도 사라졌다. 남자와 여자는 대립적인 극으로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비개성화된 평등이라는 이상을 설교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 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