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말로 해 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 몸속에서 느꼈다. 문진 안에서도, 당구대 위에 놓인 빨갛고 하얀 공 네 개 안에도 죽음은 존재했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아주 작은 먼지 입자처럼 폐 속으로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죽음이란 것을 완전히 삶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죽음은 언젠가 우리를 잡아챌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죽음이 우리를 움켜쥐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게 붙잡히지 않는다.’라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삶은 이쪽에 있고, 죽음은 저편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날 밤을 경계로 이미 나는 죽음을 (그리고 삶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p.55
이육헌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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