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않아서 자유로운
데이비드 이글먼의 책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쓴 글
2026.06.16
1.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
뇌,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을 다룬 여러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스스로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의지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고 앞으로도 그러할테지만, 가끔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암묵적인 자기중심주의는 우리가 직업을 결정할 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팰럼의 연구팀은 여러 직업의 관련 단체 주소록을 분석한 결과, 이름이 데니즈Denise 또는 데니스Dennis인 사람 중에는 치과의사dentist가 유난히 많고, 이름이 로라Laura 또는 로런스Lawrence인 사람 중에는 법률가lawyer가 많고, 이름이 조지George 또는 조지나Georgina인 사람 중에는 지질학자geologist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지붕수리roofing 회사의 소유주 중에는 이름 첫 글자가 H인 사람보다 R인 사람이 더 많았으며, 철물점hardware store 주인 중에는 이름 첫 글자가 R인 사람보다 H인 사람이 더 많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직업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한 결과, 의사의 성에 doc, dok, med가 유난히 많이 포함된 반면, 법률가의 성에는 law, lau, att가 유난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 모든 연구 결과는 통계적인 의미라는 기준을 통과했다. 이름 철자의 영향이 크지는 않아도, 분명히 확인할 정도는 된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충동, 위의 연구들에서처럼 통계적으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믿지 않았을 충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책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p.94
하지만 동시에 1) 우리가 나 자신의 작동원리 또는 우리가 속한 세계의 작동원리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2) 실은 내 행동과 욕망 조차도 때로는 스스로의 의도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곧 결정론으로 직행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도 믿는다.
(책의 주장을 내 멋대로 해석해보자면) 우리는 뇌의 내밀한 영역들을 더 깊이 알아나가고 있는 셈이다. 주어진 필연적인 한계와 제약조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2. 삶의 태도
수많은 한계와 제약조건 속에서 내린 선택을 오롯이 나의 것이라 여길 것인가, 한계에 갇혀있다고 여길 것인가. 결정론과 자유의지라는 두 대립항에 대한 질문은 결국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이 날개가 없어서 하늘을 날지 못하기에 자유롭지 못했던가. 아가미가 없어서 물 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기에 자유롭지 못했던가. 수많은 과학의 증거들이 결정론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예정되었을지도 모르는 환경과 운명을 극복하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사랑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염세와 비관에 빠져드는 대신에.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가 우월전략이라고 믿는다. 최선을 다한 승부에서는 설령 지더라도 후회가 없다. 운 좋게 승리한 승부는 오히려 공허하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결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의지의 편을 택하려 한다.
“사람은 창조의 걸작이다. 그 어떤 결정론으로도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로 행동한다는 인간의 믿음을 막을 수 없다는 점 때문만이라 해도.” - 게오르크 C. 리히텐베르크, ‘금언집’
3.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류의 자유의지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저자는, 인간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살포시 닫아가며, 개개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법 시스템을 설계하자고 말한다.
간질, 조현병, 우울증이 생물학적인 문제가 되어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일. 갑작스럽게 아동 포르노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알렉스가 안와전두피질에서 종양을 제거한 후 정상으로 돌아오는 일. 뇌의 물리적 작용이 나의 선택에 영향을 행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알아가는 일이 인간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고 믿는 쪽이다.
개인이 운명을 극복하려 드는 일과, 사회가 그 운명의 생물학적 조건을 함께 떠안으려는 일은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알면 알수록 인간 개개인은 자유롭지 않고 여러 구조에 단단히 묶여있는 듯 싶다. 하지만 행위의 결과를 처벌하고 교정하려 드는 과거의 법체계에서 더 나아가, 생물학적인 기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상황을 살피려 애쓰는 덕에 인류는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