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5일(금)
- ‘죽음은 그저 존재 양식의 변화.’
배우 조현철의 2022년 백상예술대상 조연상 수상소감 (링크)
"지금 저희 아버지가 투병 중이세요. 아마 진통제를 맞고 시상식을 보고 계실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해 동안 내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1980년대 상봉동 진폐증 사건 피해자), 김용균군(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작업 도중 사망), 변희수 하사(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판정을 받은 뒤 극단적 선택) 그리고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모.... 나는 이들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 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 - 동생이 앓았던(이라고 하기에는 그 기간조차 너무 짧았던) 병의 이름은 급성 심근염이었다. 해외 출장에서 감기에 걸려 돌아왔는데, 그 탓인지 바이러스가 심장 근육에서 염증을 일으켜서 심폐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었다. 산소를 혈액에 넣어 체내로 공급해주는 체외순환기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떠났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질때나 자고 일어났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질때면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생각한다.
2026년 6월 3일(수)
- 예전에 미리 유언장을 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생이 떠날 즈음의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 문득 그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 당시의 중환자실에는 심장이식만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가 동생을 포함해 두 명 있었다. 두 가족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을 보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았던 아저씨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떠나셨다. 아저씨의 아내와 아들 둘이 대기실을 떠나갔다. 추석 연휴에는 장기 이식을 관장하는 국가 기관도 병원도 쉬어간다. 그 사이 동생도 떠나갔다.
- 심장병원 중환자실에 앉아서, 잘 맞는 심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심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일은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일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만에 하나 목숨을 잃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먹고 하니까 5분도 안 걸리네… - 더하여 유언장을 쓰게 된다면, 내가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얼마나 받을 것인지 - 그리고 어떤 조건이 되면 중단을 선택할 것인지를 쓰겠다고도 다짐했었다.
2026년 6월 1일(월)
- 인간이 AI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존재와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죽음과 유한성이야말로 인간의 존재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게 아닐까.
2026년 5월 24일(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가 개선 장군 뒤에서 "우쭐대지 말고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26년 5월 23일(토)
- 동생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인간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잊고 외면하고 산다. 이후로 종종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비오는 늦은 밤 퇴근 택시 뒷 자리에 앉아서,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다가, 몸이 아픈 날 침대에 누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