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6일(일)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p.55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말로 해 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 몸속에서 느꼈다. 문진 안에서도, 당구대 위에 놓인 빨갛고 하얀 공 네 개 안에도 죽음은 존재했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아주 작은 먼지 입자처럼 폐 속으로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죽음이란 것을 완전히 삶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죽음은 언젠가 우리를 잡아챌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죽음이 우리를 움켜쥐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게 붙잡히지 않는다.’라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삶은 이쪽에 있고, 죽음은 저편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날 밤을 경계로 이미 나는 죽음을 (그리고 삶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2026년 6월 5일(금)
- ‘죽음은 그저 존재 양식의 변화’
배우 조현철의 2022년 백상예술대상 조연상 수상소감 (링크)
"지금 저희 아버지가 투병 중이세요. 아마 진통제를 맞고 시상식을 보고 계실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해 동안 내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1980년대 상봉동 진폐증 사건 피해자), 김용균군(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작업 도중 사망), 변희수 하사(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판정을 받은 뒤 극단적 선택) 그리고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모.... 나는 이들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 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 - 동생이 앓았던(이라고 하기에는 그 기간조차 너무 짧았던) 병의 이름은 급성 심근염이었다. 해외 출장에서 감기에 걸려 돌아왔는데, 그 탓인지 바이러스가 심장 근육에서 염증을 일으켜서 심폐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었다. 산소를 혈액에 넣어 체내로 공급해주는 체외순환기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떠났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질때나 자고 일어났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질때면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생각한다.
2026년 6월 3일(수)
- 예전에 미리 유언장을 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동생이 떠날 즈음의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 문득 그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 당시의 중환자실에는 심장이식만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가 동생을 포함해 두 명 있었다. 두 가족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을 보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았던 아저씨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떠나셨다. 아저씨의 아내와 아들 둘이 대기실을 떠나갔다. 추석 연휴에는 장기 이식을 관장하는 국가 기관도 병원도 쉬어간다. 그 사이 동생도 떠나갔다.
- 심장병원 중환자실에 앉아서, 잘 맞는 심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심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일은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일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만에 하나 목숨을 잃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먹고 하니까 5분도 안 걸리네… - 더하여 유언장을 쓰게 된다면, 내가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얼마나 받을 것인지 - 그리고 어떤 조건이 되면 중단을 선택할 것인지를 쓰겠다고도 다짐했었다.
2026년 6월 1일(월)
- 인간이 AI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존재와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죽음과 유한성이야말로 인간의 존재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게 아닐까.
2026년 5월 24일(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가 개선 장군 뒤에서 "우쭐대지 말고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26년 5월 23일(토)
- 동생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인간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잊고 외면하고 산다. 이후로 종종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비오는 늦은 밤 퇴근 택시 뒷 자리에 앉아서,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다가, 몸이 아픈 날 침대에 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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