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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이 곧 보상이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사이먼 시넥의 책 ‘인피니트 게임’을 읽고 쓴 글

2025.02.01

수능을 잘 보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세상이 다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왠걸. 다음은 취업 준비나 자격증 획득을 향해 달려나갈 시간이다. 그 다음도 있다. 승진과 이직. 재테크와 내집 마련. 결혼과 출산과 육아, 그리고 자녀교육에 이르기까지. 일찌감치 많은 것들을 해두면 나중의 삶은 좀 수월해질까 싶지만 삶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이번 판만 끝내면 해피 엔딩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게임은 계속 될 뿐더러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 한 단계가 끝나면 쉴 틈없이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심지어 아직 결혼과 출산 테크트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쉽지 않다.)

책 ‘인피니트 게임’의 핵심 아이디어는 세상을 1) 참여자의 명단, 게임의 목적, 게임의 규칙이 미리 정해져있는 ‘유한게임’과 2) 그렇지 않은 ‘무한게임’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 자격증의 획득, 졸업과 취업, 승진 같은 것은 승패가 갈리고 종료 시점이 정해져 있는 유한게임이다. 하지만 커리어 전체, 결혼과 우정같은 관계, 그리고 비즈니스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여정 자체가 곧 게임인 무한게임의 영역이다. 무한게임의 영역에서는 이 게임을 계속해나가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한 판 승부로 결정지어지지 않는 무한게임의 경기장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게임을 이어나가야 할 무한게임의 경기장에서 유한게임 사고방식으로 경기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겨버린다. 오래도록 게임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의지력과 자원을 순식간에 다 써버리게 된다.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을 탑재하게 되고, 중요한 일을 해나가는 대신 급한 일에 집중한다. 무리하게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방어적이 되거나 또는 공격적이게 된다. 조직 문화는 흔들린다.

책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현대 자본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론가 밀턴 프리드먼의 기고문을 인용하며, 지난 50여년 간 기업의 우선적인 목표가 단기적인 부의 축적과 주주 환원에 집중되면서 유한게임 사고방식이 팽배해졌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 주주들에게 돌려줄 지가 지상과제가 된 자본주의 사회. 메인 플레이어인 기업들이 단기 성과에 집중하다보니 역설적으로 최고의 제품, 최선의 서비스, 훌륭한 팀, 강한 기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자연스레 개개인의 행복도 또한 낮아지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유한게임에 임해야 할 때도 있다. 인생에 한두 번 찾아오는 흔치 않은 순간들이 있으니까. 신체능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온몸 던져 훈련하며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하며 자격증을 따거나 의미있는 연구 결과를 남기는 것, 급변하는 기술 상황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속에서 큰 투자금을 받아 수 년 내에 기업 가치를 몇십 배로 성장시키는 데에 몰두하는 것. 다만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유한게임에 참여할 것인지,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또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 싶다.

가끔 버겁고 지친 느낌을 받는다면, 우리가 무한게임의 경기장에서 유한게임 사고방식으로 플레이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살펴보며 게임에 임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기적인 수익을 극대화하느라 애쓰는 대신 대의명분을 추구하고 나와 함께 하는 동료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신뢰할 때, 우리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비로소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며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을 대신해 시상식에 나오며 했던 대리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제가 설국열차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송강호 씨가 옆을 가리키면서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있어서 벽인줄 알고 있지만 이게 사실은 문이다.”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내년 한 해 벽인 줄 알고 있었던 여러분만의 문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단기적인 수익에 시선이 가기 마련인 현실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에게도 또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에게도 가장 필요한 태도는 결국 ‘용기’겠다. 벽인 줄 알았던 문을 열어보는 것. 남이 정한 게임의 룰을 따르는 대신 오로지 나만의 의미와 방식을 찾고 묵묵히 실행해나가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무한게임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무한게임에서는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다. 게임에는 명확한 종료 지점이 없어서 사실상 '이긴다'라는 개념도 없다. 무한게임의 주목적은 게임을 계속해나가며 그 게임을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것이다.

무한게임을 유한게임 사고방식으로 진행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문제로는 신뢰 상실, 협력 관계 붕괴, 혁신 실패 등이 있다. 반면 무한게임 사고방식으로 임하면 게임의 전개 양상은 현저히 나아진다. 무한게임 사고방식을 택한 단체는 구성원 간 신뢰도가 월등이 높아지고, 협력 관계가 더욱 넓어지며, 혁신을 이룰 수 있고, 그에 따르는 수많은 이익까지 누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대체로 무한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참여한 게임의 특성을 정확히 분별하는 능력을 모두가 길러야 한다. 또한 무한게임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이끄는 법을 익혀야 하고, 유한게임 사고방식이 끼어들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큰 피해를 보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유한게임식 참여자는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들지만 무한게임 사고방식의 참여자는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제품을 만든다.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들 때 초점은 상품의 판매가 회사에 어떤 이득을 주는지에 맞춰져 있다. 반면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제품을 개발할 때는 구매자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에 중점을 둔다.

유한게임 방식으로 무한게임에 참여하면 게임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의지력과 자원을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수렁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유한게임식 리더는 단기 결과에 과하게 몰두하므로 실적을 내는 데 유리한 전략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보통 연구 개발에 투자를 줄이거나, 무리하게 비용을 절감하거나 (예를 들면 정기적인 정리 해고, 값싸고 질 낮은 원료 채택, 생산이나 품질 관리 절차 무시가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외형 성장을 꾀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한다. 무턱대고 이런 전략을 시행하면 기업 문화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 직원들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실적 앞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이에 대응하여 본능적으로 자기방어 태세에 돌입한다. 다른 직원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실수를 숨기고,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위험을 회피한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는 적자생존의 정신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공격적인 전략을 펼친다. 그들의 자의식은 점점 커진다. 상사들에게 호의를 얻고자 노력하고 동시에 동료의 성공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들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결국 서로 협력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면 진정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는 어려워진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어난 사태가 바로 이와 같다.

리더는 다음 세 가지 항목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1. 특정 게임이 유한게임인지 무한게임인지는 정해져 있으므로 선택할 수 없다.
2. 게임에 참가할지 말지 정할 수 있다.
3. 게임에 참가하기로 했다면 유한게임 방식으로 플레이할지, 무한게임 방식으로 플레이할지 정할 수 있다.

사모 투자 전문 회사나 벤처캐피탈 회사는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자신들이 무한게임식 대의명분을 품은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진짜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매각 시점 전까지만 그렇다. 그때가 오면 갑자기 주주의 이익에만 몰두할 뿐 대의명분이나 다른 이해관계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유한게임식 목표 달성을 명목으로 투자자들이 회사에 가하는 압력은 장기적으로 회사를 망가뜨릴 수 있으며, 실제로 그 압력으로 인해 쓰러지는 회사들이 많다.

의지력은 실체가 없고 측량하기 어렵다. 의지력이란 사람들이 근무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의욕, 동기 부여, 헌신, 참여 욕구, 자발적인 노력 등이 의지력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의지력의 원천은 내부에 존재한다. 리더가 얼마나 훌륭한 리더십을 지녔는지, 대의명분이 얼마나 명확하고 굳건한지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의지력은 기업의 건전성을 결정하는 모든 인간적 요소의 총합이다.

직원들의 의지력을 우선시하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두는 이유는 리더가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지와 연관되어 있다. 기업은 자금을 지출하고 관리하는 면은 뜻대로 할 수 있지만 자금을 벌어들이는 쪽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정치적 상황, 경기 순환, 시장 변동, 다른 참여자들의 행보, 고객의 선호, 기술 발전, 기후를 비롯한 각종 불가항력의 요인으로 인해 자원을 축적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을 위험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리더가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직원들의 의지력은 리더의 장악력으로 거의 완벽히 만들어갈 수 있다. 의지력은 기업 문화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리더가 무한게임식 목표보다 유한게임식 목표에 더 관심을 두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 데 회사를 끌어들일 때 탈선이 일어난다.

사실은 직원들이 대의명분을 향한 열정으로 노력했기에 회사가 성공을 거뒀는데, 리더가 자신의 재능으로 성공했다고 착각할 때도 유한게임과 무한게임 사이 갈림길에 선다. 이러한 리더는 보통 회사와 대의명분을 무시하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취득하는 데 집착한다. 이렇게 되면 경영진은 직원들과 멀어지고 신뢰도는 바닥을 친다. 그러면 자연히 회사의 실적이 떨어지는데, 이때도 유한게임에만 빠져 있는 리더는 회사가 애초에 왜 엇나갔는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