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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아이러니에 관한 횡설수설

헤르만 헤세 책 ‘싯다르타’를 읽고 쓴 글

2025.03.18

1.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생로병사라는 고통의 굴레에 빠져든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 자체가 고통을 가져다 줄 뿐더러, 그 시간 속에서도 수많은 욕망과 집착이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하는 과정은 힘겨웠고, 조금씩 깊어가는 주름과 떨어져가는 체력에 좌절하곤 했으며, 앞으로의 시간들은 기대되는 만큼이나 두렵기도 하다. 태어났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굴레다. 어떻게 하면 고통으로 벗어나 평온함에 이를 수 있을까. 인류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물어왔으나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일까.

2.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 p.206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의 입을 빌어, 실은 우리 모두에게 완전성에 대한 답이 있다고,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 p.204

그저 각자가 지닌 깨달음이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완전함은 모두의 마음에 있으되 언어 따위로는 결코 전할 수 없는 것이며, 본인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

3.

“누군가 구도를 할 경우에는.”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스님, 당신은 어쩌면 실제로 구도자일 수도 있겠군요.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p.201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그 밖의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애초 목표로 했던 것마저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마치 운동을 잘 하려면 몸에서 힘을 빼야 하는 것처럼, 돈을 잘 벌려면 돈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것처럼.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고, 가장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구하려 하면 깨달음에서 멀어진다.

4.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 p.147

고고히 흐르는 강물은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공허감에 휩싸여 강물에 뛰어들어 죽으려 했던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난다. 뿐만인가. 아버지를, 고타마를, 카말라를 떠나고, 갖고 있는 것들 그리고 가질 뻔 했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늘 새로운 깨달음을 그리고 새 삶을 얻어낸다.

5.

작년 이맘때 즈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 또는 일어난다 한들 아무렇지 않을 일, 또는 애시당초 틀린 일에 괜스레 마음을 쓰고 걱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나였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연스레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연습을 한다. 평소에는 결코 해보지 않은 일들이다.

그리하여, 대화의 대부분에서 나는 내가 괴로웠고 거슬려해왔던 무언가들이 실은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난 무언가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어떤 것들은 내가 너무 상대를 사랑하고 기대했기에 생겨난 헛된 기대였고, 또 어떤 것들은 내게 있었던 과거의 계기로 인해 생겨난 -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모든 고통은 내 밖의 무언가가 아닌, 내 마음이 만든다.

6.

책 ‘싯다르타’를 덮으며 인생이라는 아이러니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인생은 정말이지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

뭔가를 손에 넣고자 하면 가질 수 없었고 내려놓으면 손에 들어온다. 좋아하는 것들을 얻으면 얻었기에 고통이 가득해지고, 내가 싫어하고 멀리했던 것들 속 한 켠에도 실은 그 나름의 부처가 앉아 있었으리라. 깨달은 자 고타마는 그 가르침을 결코 남에게 전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의 반에 반이나 이해했을까.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러니를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이 조금은 평온해지는 것 같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 강물도 가까이서 보면 그 파도가 거세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고고히 흐르고 있을 뿐이다.

멀리 돌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이러나 저러나 상관 없다’에 가까울테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내 주변을,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를 조금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간 인생에 파도가 찾아온다면 늘 기꺼이 파도와 싸웠다.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해내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파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봐줄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기대가 생긴다. 내 마음 속에서 출렁였던 파도가 곧 잦아들 것이라는 걸 안다면, 그리고 거대한 강줄기의 극히 일부분임을 안다면, 예전엔 나를 뒤흔들었을 파도마저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아름다운 윤슬로 여길 수 있을테니.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과 이번 시즌의 여러 책들, 특히 이번 책 ‘싯다르타’ 덕분이다.

"앞으로 나의 길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그 길은 괴상하게 나 있을 테지, 어쩌면 그 길은 꼬불꼬불한 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길은 원형의 순환 도로일지도 모르지. 나고 싶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 p.140

*트레바리 독서모임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의 독후감으로 쓴 글.